애인에게
너도 알겠지만 나는 너를 만나고 많이 변했어.
한국에서 여름을 보내면서도, 런던에 돌아와 학교를 다니면서도,
이번 생일을 준비하면서도 여러번 든 생각인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이만큼의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게
참 신비로운 것 같아.
너 하나 때문에 이렇게 달라진 내가 낯설다가도 ..
그 변화들이 사실 내가 오랜 시간
갈망해온 것들이라는 걸 잘 알아서 감사할 때가 많아.
고마워 내 애인.
네게도 내가 이런 의미인지,
만약 우리가 정말로 서로 같은 마음을 느끼고 있는 거라면
그건 정말 천운일 거야, 그렇지?
더 이상 내 스스로를 죽이고 싶을 만큼 내가 밉지도 않고,
학교 가는게 전처럼의 스트레스도 아니고.
혼자 독립적이고 안정적으로 시간을 보내다가도
네가 그 하루 어떤 구석에 껴도 싫지 않은 것.
고차원적인 대화부터
아주 원초적이고 유치한 이야기들의 범위까지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과 같은 곳에 소속이 되어있고 매일같이 본다는 것.
서로를 잘 알기에 감출 필요도 꾸밀 이유도 없다는 것.
내 어떤 모습도 무조건적으로 응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마찬가지로 네 어떤 모습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요즘 이런 것들로 부터 존재론적인 감사를 느낀다
. 태어나줘서 고맙고, 존재해줘서 고맙고,
한눈에 나를 알아봐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이런 작은 순간 순간들에 충분히 감사하며 살고 싶어. 오래도록.
너와 이주간 매일을 같이 보내고, 아침과 저녁을 차려먹고,
유치하게 다투다가도 진지한 대화 속에서는 서로 낯을 굳히고.
이런 일상을 보내면서 하나 깨달은게 있는데.
너는 정말이지 바보같다는 거야. 사랑 앞에서만.
밖에서는 암만 고능하고 유식한 취급을 받다가도 ..........
그렇게 이성적으로 굴다가도
내 앞에서만 머저리 코찔찔이가 되는 모습들이
어쩐지 우습고 좋았어.
처음 만나보는 감정 앞에서 면역 하나 없이
어리숙해지는게 다 티가 나서 그것도 웃겼다.
너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지만,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어리석어.
그런 너의 어리석음을 사랑해.
네 우매하고 겁 없는 모습을 사랑해.
정말 그런 것 같아.
앞으로도 나는 자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고
앞으로도 너는 자주 어리석었으면 좋겠어.
말했듯 앞으로 내가 네 생일에 몇 번이나 존재하게 될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너와 내 일상에 작은 행운이 자주 따라 붙었으면 좋겠어.
우리끼리라도 축복할 일이 잦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그런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이를테면
고생하며 준비한 프로젝트의 크릿이 무사히 끝난다거나,
칸틴 밥이 생각보다 괜찮은 날이라던가,
운 좋게 마지막 남은 피스타치오 쿠키를 사게 되는 것.
그런 일들.
그런 일들에 감사하고 쉴 새 없이 떠들 수 있는 건 지금뿐이잖아.
지금 이 때, 이 계절, 이 도시에 함께 존재하는 이 순간뿐이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자주 축복하고 또 자주 감사해하자.
그리고 그런 소소한 일상에 대해 너랑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싶어.
이제서야 알겠어, 네 말이 맞아.
나도 너와 다름 없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이 정도의 온도로만 삶이 유지된다면 참 좋겠다.
그리고 이건 직역하자면 지금 꽤나 행복하다는 거지?
앞으로도 너와 내가 함께 행복할 수 있기를. 생일 축하해.
우리 멀지 않은 날에 꼭 네덜란드로 떠나자.
하나뿐인 애인아
몇번이고 말했지만 나는 여전히 말이야
세상이 내게 너를 보내준 것을 감사히 여겨
성애적 사랑일지 인류적 차원의 사랑인지 분간도 못하고 뛰어들었던 그 불나방 같은 나의 어리석음에 감사해질 만큼
나는 지금이 좋아
지금 너와의 이 마음이 좋아
사랑한다는 말을 굳이 적지 않으며, 사랑을 담아
ⓒ 2025 Mou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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