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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잔다. 잘 잔다.
나는 술만 마시면 눈이 일찍 떠지는데.
오늘은 자정 조금 넘어 잤는데 오전 네 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났다. 잦은 음주와 무리한 약 복용으로 간이 노화되어 그런 거라던데,
회복이 더뎌서.
수빈은 왜 잘 잘까.
모로 누워 가만 자고 있는 언니를 보면 나는 애틋해진다.
우리는 정말 우리만 할 수 있는 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좋고 또 어쩌면 나쁘다
. 유일하나 결코 건강한 방향은 아니기에.
예를 들자면, 수빈은 내가 지하철을 탈 때마다
두 다리를 절단하고 싶어한다는 걸 안다.
그러니까, 내 말뜻을 이해한다는 거다.
내 마음까지도.
그래도 어제는 수빈과 함께
우리 이 정도면 많이 나아졌다며 기뻐했다.
얼굴만 내놓고 계곡에 몸을 담가 한참을 앉아 있기도 했고,
크래커에 무화과 잼과 크림치즈를 얹어 먹기도 했다.
적당한 당도로 익은 복숭아에 복숭아 와인을 곁들여 마신 건
명확한 여름의 시작이었다.
복숭아의 단내 때문에 아주 작은 벌레들이 우리 얼굴 주변을 헤집고, 해는 몹시 뜨겁지만 수력을 느끼는 우리의 피부는 서늘하고.
담배는 계속해서 계곡물에 젖고,
그럼에도 기분이 청명한. 바야흐로 여름, 그런 거.
내가 “그 사람을 불쌍하게 만들었어.“라고 말하니
수빈은 그 사람의 말이 참 폭력적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 사람한테 나는 더 폭력적이었겠지?” 하고 되물었지만,
그런 건 전부 상대적인 거라 길게 생각하면 너만 번잡해진다며
나를 어르었다.
언니, 얼른 일어나.
나 심심해.
심심해서 조금 번잡해지려고 해.
아침에 또 수영하기로 했잖아.
같이 남은 참외 먹고 구제 가게도 구경 가기로 했잖아.
그래도 있지, 언니랑 하는 여행은 늘 즐거워.
언니랑 여는 여름이 싱그러워.
나는 종종 언니 애인한테 질투 나고 그런다.
언니가 기억할지는 모르겠다만, 어젯밤에 계단에 앉아서 담배 핀 거. 그때 언니가 한 말.
나는 그게 너무 감사해.
더는 죽고 싶지 않다는 말.
영원을 믿진 않지만 평생을 그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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