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구일









에는
신념을 지키며 늙고 싶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십일시 삼십 분이 되자 감쪽같이 불행해졌지

어떤 깨달음은 벼락과도 같아서
되레 꼼짝도 못하겠는 것이다

수빈 언니는 멜번에서 내게 성탄절 편지를 써 부쳤고
그걸 읽으며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울 것 같았다

죽음과 가까운 사람은
근사해 보일 수밖에 없어
니나 부슈만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건 좀 나쁜 생각 같지

있지 나는 내가 부끄러워
전부 그렇지만
유독 나의 혐오가 부끄러워
그건 발설 전까지는 나만 아는 것

부끄럽지 않은 건 사랑뿐이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몇 번 영화로울 때가 있지만
이제는 멈추고 싶기도 해


내 마음 같지 않은 나의 사랑들

더 이상 사랑이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사랑이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햇빛 한 줄기 조차 없이도
내 발목까지 무럭무럭 잡초처럼 자라난 기장의 사랑들이
아킬레스건을 묶어 걸음을 붙잡을 때마다
이런 마음을 먹지 않을 수 없는 거야 나는

그렇지만


미운 얘기를 하다 보면
미운 것들이 더 미워지고

싫은 얘기를 하다 보면
싫은 마음이 더 싫어진다


시현 언니는 어느 날
분명히 내가 초연해질 것이라 했다

모든 것은 의미가 없기에 오히려 좋다던 언니의 그 말

그 또한 내게는 벼락 같았고
마침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내게 절창은 없어

그렇지만 언니 말대로
언젠가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굴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극단주의자의 사랑〉 같은 제목을 보고
마음 이끌리고 싶지 않았는데
극단으로 살다가 엉망이 되어버린 캐릭터들에
이입하고 싶었던 적 없었는데






사랑해
그렇지만

불타는 자동차에선 내리기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 허연









scanned sketchbook, 2024
























      231231  


 칠월 구일


       이월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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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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